내 급여만 빼고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6년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이면서 노사협약으로 임금을 정하는 사업장 1만738곳의 임금인상률은 3.3%였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9년의 1.7%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협약임금에는 연·월차수당, 생리수당, 배당금 형식의 성과급 등이 포함되지 않아 실제로 받는 명목임금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3∼5%이기에 임금이 조금 인상돼도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을 밑도는 상황에서 퇴직연금조차 수익률이 매우 낮아서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마이너스’이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은 상황과 그 이유,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본다.
퇴직연금이란?
퇴직연금이란 매월 일정액의 퇴직적립금을 외부의 금융기관에 위탁하여 관리·운용하여 퇴직 시 연금으로 받는 제도이다. 퇴직금은 근속연수 1년에 평균임금 한 달 분을 받을 수 있는데, 기업이 도산하면 월급과 퇴직금을 받을 수 없었다. 기업이 망하더라도 근로자의 퇴직급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2005년 12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의 시행과 함께 퇴직연금제도가 마련되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 퇴직 시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기업복지제도이다.
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하기로 한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어 규약을 작성하고 이를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지방 노동관서는 동 규약이 법령에 적합하게 작성되었는지를 판단하여 수리한다. 퇴직연금은 각 회사가 노사합의에 따라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 Retirement Pension)과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 중 선택할 수 있다.
확정급여형(DB)은 근로자가 퇴직 시에 받을 퇴직급여가 미리 확정된 형태로, 사용자가 매년 부담금을 금융회사에 적립하여 책임지고 운용한다. 근로자는 퇴직 시 운용 결과와 무관하게 사전에 합의된 수준의 퇴직금을 수령한다.
확정기여형(DC)은 사용자가 납입할 부담금이 정해진 퇴직연금 제도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개별 계좌에 부담금을 정기적으로 납입하고 근로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한다. 근로자가 추가로 납입할 수도 있으며, 부담금과 운용손익 총액을 근로자가 받는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은 퇴직연금 제도의 한 종류로,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급여를 자신 명의의 계좌에 적립하여 활용할 수 있다. 2012년 7월26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에 따라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확정기여형과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퇴직연금 급여를 지급받는 55세 이전까지 운용기간의 수익에 대한 추가 과세이연(課稅移延) 혜택이 주어진다. 과세이연은 세금 납부를 연기해 주는 것이다. 근로자의 자기 부담금은 연간 1200만 원까지 추가로 납입이 가능하며 55세 이상일 경우 연금 또는 일시금 중 수령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퇴직연금의 수익률
2016년 금융권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월급은 안 오르고, 물가까지 뛰는데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퇴직연금은 수익률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운용 수수료까지 고려하면 1%대 초중반에 불과하였다. 근로자 퇴직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는 뜻이다.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퇴직연금 기대수익률은 5%~8%에 달한데, 한국은 1~2%에 불과하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등 각 협회에 공시된 자료를 보면 2016년 퇴직연금 수익률은 2%를 밑돌았다. 확정급여형, 확정기여형에 따라, 은행, 보험, 증권 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연간 수익률은 2%대 이하이었다.
전체 가입액의 64%를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의 평균 수익률은 2016년 한 해 1.81%에 불과했다. 손해보험이 2.0%로 가장 높고, 생명보험(1.98%), 증권(1.82%), 은행(1.44%) 등의 순이었다. 전체 가입액의 26%를 차지하는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의 수익률은 1.71%였다. 손해보험이 2.38%로 가장 높았고, 생명보험(2.07%), 은행(1.73%), 증권(0.77%) 등의 순이었다. 통상 0.4% 정도가 붙는 수수료를 제외하면 DB와 DC 가입자들이 얻는 연간 수익률은 1% 초중반에 불과한 셈이었다. 최근 3년간 수익률도 물가상승율에 미치지 못했다. 2014~2016년 각 금융사가 운용한 수익률은 증권이 2.43%로 가장 높고, 손해보험 2.34%, 생명보험 2.17%, 은행 1.92%에 불과했다. 최근 7년 간 수익률도 3~4%에 불과하여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0년 3.0%, 2011년 4.0%, 2012년 2.2%, 2013년 1.3%, 2014년 1.3%, 2015년 0.7% 등이었다.
수익률이 낮은 은행에 돈이 많다
전체적으로 수익률이 낮은 은행권이 퇴직연금을 가장 많이 운용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퇴직연금의 절반이 넘는 56.9%(73조2천613억 원)를 은행이 운용하고, 생명보험이 28%(36조141억 원), 손해보험이 7.8%(9조9천704억원), 증권업계는 7.3%(9조3천959억 원)를 운용한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구조적 요인이 크다. 가입자의 다수는 은행 등에서 원금과 이자를 보장받는 상품을 선택하였다. 우리나라보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은 미국과 호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들은 80% 이상을 채권이나 주식, 펀드 등 실적배당형에 투자하는데, 한국 가입자는 적립금의 90% 이상을 은행 예금이나 보험상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에 투자했다. 최근 우리나라 예금금리는 2% 내외로 매우 낮아서 비록 이자를 받더라도 운용수수료 0.4%를 빼고 나면 수익이 거의 없다.
원리금을 잃지는 않지만 수익도 기대할 수 없는 셈이다. 저금리시대에 원리금을 보장받은 확정급여형(DB)으로는 사실상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다. 최근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은행 등 시중은행의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1.4~1.5% 수준이었다.
수익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퇴직연금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투자상품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긍정적이지만 원금조차 받지 못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증권사, 자산운용사는 최근 퇴직연금 자산을 다양한 투자처로 돌렸다. 한 자산운용사의 DB형 부동산펀드는 부동산 리츠 대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목표수익률이 3%다. 한 증권사도 퇴직연금 편입 상장지수펀드를 131개로 확대해 해외주식형 펀드보다 리밸런싱이 용이한 해외, 주식, 채권 등을 편입했다. 해외지수와 연계된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회사와 근로자도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증시변동 등 달라지는 금융환경에 대비해 퇴직연금 상품 비중을 조절하는 사후관리 노력이 필요하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 10곳 중 9곳 이상이 사후관리를 하지 않고, 가입자들도 10명 중 7명 이상은 운용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회사와 근로자가 위험이 낮은 원리금보장상품을 선택하고, 금융기관의 투자상황에 무관심하면 마이너스 수익률은 지속될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운용수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투자에 똑똑한 사람만 돈을 벌 수 있다.
참고=고용노동부 퇴직연금 http://www.moe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