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서희 장군을 벤치마킹하자

지방행정에 관한 잘못된 대표적 고정관념은 자치단체 내부의 일에만 신경 쓰면 성공한 지방자치를 저절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치만 잘하면 될 뿐, 외교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럴까?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수장들에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꼭 일독할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군주론을 독파하기에 앞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성공하는 민선자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와 행정을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는 통합적 사고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다.
민선자치의 중요한 특징은 자치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주민들이 참여하는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일꾼들이 현실정치를 맹목적으로 경원하고 혐오하는 것은 마치 도끼로 자기발등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마키아벨리는 유능한 군주가 되려면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교활함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저술할 즈음의 이탈리아가 직면한 시대상황을 잠시 되돌아보자. 당시의 이탈리아는 독립국가나 다름없는 크고 작은 자치단체들이 저마다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분투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안으로 인구를 늘리고 경제를 성장시켜도 대외관계에서 치명적으로 일을 한번 그르치게 되면 오랜 세월 쌓아온 공든 탑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마키아벨리가 그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비난과 돌팔매질을 묵묵히 참아가면서 주장한 명제들은 내부의 백성들을 상대할 때가 아니라, 외부와의 교섭에 임할 때 통치자가 머릿속에 간직해야만 할 자질과 덕목을 적시한 것이라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마키아벨 리가 ‘군주론’을 쓰려고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기 무려 5백여 년 전에 이 땅에서는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지혜를 번갈아 유효적절하게 실천한 두 얼굴의 사나이가 이미 활약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단기필마로 80만 거란대군의 진영을 유유자적 누비며 압록강 동쪽의 강동6주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단지 세 치의 혀로써 되찾은 서희(942~998)장군이다.
북방의 강호로 군림하던 발해를 순식간에 멸망시킬 만큼 기세가 등등했던 거란이 엄청난 숫자의 대군을 휘몰아 고려로 쳐들어왔으니 조정의 국왕과 대신들이 얼마나 놀라고 겁을 집어먹었겠는가. 조정에서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당장에 항복하거나, 서경 즉 지금의 평양 이북의 강역을 거란에게 할양하자는 무기력한 보신책이 전부였다.
건국 초기의 고려는 문신과 무신의 구별이 아직은 뚜렷하지 않았다. 문무를 겸비한 곧 마키아벨리가 바랐던 두 얼굴의 인물이 존재할 수 있는 풍토였다. 하지만 풍토가 뒷받침된다고 해서 거기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자와 여우의 얼굴을 두루 가진 서희 장군이 그때 마침 있었다는 사실이 후세의 우리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담대함이 있었기에 서희는 호랑이굴로 서슴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치밀함이 있었기에 그는 적장 소손녕과의 담판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었다. 뛰어난 외교술 덕택에 고려는 거란군의 철수에 더해 옛 고구려 영토의 일부까지 수복하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서희 장군의 성공한 협상의 배경에는 동시대 동아시아 정세의 전반적 흐름을 꿰뚫는 날카로운 안목과 식견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한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활용하는 노련한 협상솜씨 또한 아울러 자리하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때로는 안에서는 멀쩡했던 바가지가 밖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경우도 있다. 나 혼자 지역 안에서만 열심히 일한다고 하여 능사가 아니다. 지역이 발전하려면 중앙정부와의 원만한 협조관계는 물론이고 이웃한 지자체들과의 효과적인 공조체계 역시 필수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외국 자치단체들과의 교류 및 협력도 증진해야 한다. 사자와 여우의 장점을 함께 지닌 외교가형 지방일꾼의 출현을 대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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