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종
<본지 공동대표>
우리가 지금 어떤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는지가 궁금하면 과거를 되짚어보는 것도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이 사망 5개월 만에 지하철역에서 노숙 중이던 발달장애 아들 A씨의 입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다섯 달 넘게, 두 모자는 우리 사회에서 철저히 보안이나 되듯 방치돼 있었다.
이런 사실도 사회복지사 정미경 씨가 지하철 노상을 오가며 지켜본 관심이 밝혀낸 것이다. 노숙인 발달장애인이 추위에 부르튼 손은 까져있었고, 텅 빈 구걸함 앞엔 ‘엄마가 돌아가셨다. 도와 달라’는 쪽지를 보면서 몇 번의 설득과 대화를 유도한 끝에 알려졌다.
현장은 참혹했다. 집안에는 A씨 어머니가 숨진 채 누워있고, 국과수는 발달장애인 어머니가 5달 전에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지자체는 뒤늦게 발달장애인 대한 장애 등록과 함께 긴급복지 생계비 지급 등 자립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다. 안타까운 사연과 현실에 목이 멘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 2018년 충북 증평 모녀 사망 사건, 지난 해 관악구 탈북 모자 사망 사건과 동일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정부, 정치권, 언론 등 각계각층들은 앞 다투어 난리법석을 떨며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구청이나 주민센터, 이웃에서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변명다운 변명은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변명치고는 좀 얼굴은 성벽처럼 두껍고 마음은 숯 검댕이 같은 뻔뻔함의 일색이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조선시대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 등지에게 복지정책은 어떠했을까? 상당히 선진적이었다. 자립이 가능한 시각장애인들, 이들은 점을 치는 점복, 경을 읽어 질병을 치료하는 독경,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같은 직업을 갖고 자립했다. 이어 자립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은 물품을 주어 구제하는 구휼(救恤)이나 흉년에 가난하고 궁색한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진휼(賑恤) 등의 명목으로 전통사회에서도 이런 어려움에 국가적인 도움이 있었다.
또한 모든 장애인에게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 대신 베를 짜는 포(布)를 받았으며 연좌제도 적용하지 않았다.
더더욱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세종(世宗)의 총애를 받은 좌의정 허조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는 척주장애인이었고, 우의정까지 오른 권균은 뇌전증 환자였다. 숙종 때 우의정 윤지완과 광해군 시절 좌의정을 역임했던 심희수는 지체장애인이었고, 영조와 정조 시대 명재상이었던 체재공은 시작장애인이었다고 한다.(출처. 조선시대 장애인 복지정책) 필자가 서두 첫 머리에서 “우리가 지금 어떤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는지가 궁금하면 과거를 되짚어보자”라고 한 말은 역으로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될까?”를 물은 것이다. 그 답은 “지금 우리 사회가 뭘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이다.
국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3차 대유행’이 지속하는 가운데,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정부가 K-방역 홍보비로 1천200억 원을 썼다’며 방역 치적 홍보에만 신경 쓰느라 백신 확보 노력 등을 게을리 했다고 비판하자, 정부 당국자는 67억 원 정도 사용했다고 하는데, 1천200억 원이든 67억 원이든 국민 세금이 우선되어야 하는 곳은 사회적약자 중에서도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삶에서의 가장 존귀한 생명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들 모자는 ‘송파구 세 모녀 사건’ 등 이전 사례와 마찬가지로 ‘부양 의무자’ 기준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장애 등록을 위해서는 수백만 원의 돈이 드는 것도 이들 모자를 비극으로 내몬 것이다. 재난 지원금도 시대적 중용에 맞게 지급하는 것도 시급하고 당연한 일이나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리다 죽거나 죽어가는 이들의 돌봄이 정부나 정치권, 사회가 책임을 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