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부양비·복지재정 부담 줄어
정년·연금수급연령 등 논쟁 예고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4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전체 워크숍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인 연령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며 노인 기준 연령의 점진적 상향 필요성을 제기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통상 65세인 현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높이는 논의를 늦출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다만 노인 기준 연령 조정은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 등과 얽혀 있어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박 장관은 24일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저출산위원회 제2차 민간위원 워크숍 기조연설에서 “개인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노인의 나이는 70세를 넘어선 데 비해 사회구조는 (65세로) 너무 낮게 돼 있어 비합리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서는 ‘70세부터 노인’이라는 답변이 86.3%에 달했다.
박 장관은 “불과 6~7년 뒤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되는데 그때 대책을 만들면 늦다”며 “노인연령을 몇 세로 하고 그에 맞춰 퇴직연령과 고용구조를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급연령을 65세까지 5년마다 1세씩 단계적으로 올리는 국민연금법을 “좋은 선례”로 제시하며 “다면적으로 노인 연령을 어떻게 규정하고 바꿨을 때 이행과정을 어떻게 면밀하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위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해 달라”고 말했다.
김상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고령화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노인 연령 문제와 관련해서는 연구 차원뿐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국회 모두에서 상당한 고민과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시점의 문제일 뿐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노인 기준 연령 상향에 힘을 실었다.
저출산위는 다음달 관계부처와 전문가들로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삶’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연령 기준의 필요성·적절성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이창준 저출산위 기획조정관은 “획일적으로 노인 연령을 조정하기보다 정책사업별로 그에 맞는 연령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어떤 법에도 ‘노인’의 나이가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통상 ‘만 65세’가 기준 나이로 통한다. 기초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이 65세를 기준으로 하고 노인복지법도 지하철이나 공공시설 무료·할인 혜택을 65세 이상에게 주고 있어서다.
노인 기준 나이를 올리자는 제안은 2012년부터 나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노인 기준 연령을 70~75세로 높이겠다는 중장기전략을 발표한 데 이어 2015년 박근혜 정부도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점진적 상향을 충분히 검토할만 하다”고 언급하며 논의의 불씨가 이어져왔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활발하게 일할 나이인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이미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연령 상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주장도 나온다.
박 장관이 이날 공개한 기조연설 자료에 따르면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이면 2040년 기준 노인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인구 비율)가 59.2명에서 38.9명으로 줄어든다. 그만큼 근로자 한 명이 져야 할 부양 부담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면 의료·연금 등 65세 이상 기준에 맞춘 노인복지 재정 부담도 덜 수 있다.
그럼에도 번번이 진척이 없었던 것은 그만큼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기준을 바꾸면 당장 만 65세 이상부터 받는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현재 62세에서 점진적 상향 중) 지급 연령도 함께 늦춰야 한다. 정년 연장 문제도 있다.
현재 민간기업 퇴직 연령은 49세로 법적 정년인 60세보다 한참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기준을 올리면 노인빈곤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윤숙 저출산위 사무처장은 “연금 수령은 65세부터인데 노인 연령만 올리면 그 불일치와 정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라며 “개인이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충분히 도와줬느냐 하는 반론이 나올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호철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