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남춘천역에서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에 떠나는 기차를
기다린다
철길 저 건너편으로 ‘신발, 마지막 매장 정리’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누군가의 가슴 한 쪽이 현수막에 걸려 펄럭거린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마지막 매장 정리’가 거리에서 나부꼈던가!
얼마나 많은 붉은 심장들, 허공에 걸려
‘매장 정리’를 외치고 있었던가!
내 몸이 붉은 바퀴에 밀려 어딘가로 실려 나가고
지하 셋방에 살던 그 누구도 어딘가로 떠나가고
물기 마를 날 없는 신발, 신발들
침묵으로 매달려 있다
저들의 붉은 심장에 매달린 허기진 입들,
내일은 또 어느 곳에 이르러 현수막을 걸어야 하나
현수막 속에서 펄럭이는 저들의 붉은 혓바닥과 목구멍,
어디쯤 더 바퀴를 굴려야 이 시대, 마지막 허기를 내릴 수 있을까
다 해진 신발 뒤축,
오늘 따라 무겁기만 하다
· 이영춘
· 평창 봉평 출생
· 전 원주여고 교장
·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
· 강원장애인복지신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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