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말로만 듣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한 엄청난 경험을 한 저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당시 52세) 밤에 자다가 아침이 되어 일어나려 하다 신체 우측부분의 마비로 인하여 한동안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못 일어나고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 응급실로 급히 와서 생전 처음 휠체어에 의지한 채 MRI검사를 한 결과 우측편마비를 동반한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지 두 달도 안 되어 ‘보호자 없는 병실’ 간병인이 간병인의 목욕 시키는 시간에 우측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에 상처가 발생하여 당뇨병이 있던 저는 결국 우측하지절단이란 또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앞이 컴컴해졌습니다. 큰 돌멩이로 얻어 맞은듯 멍한게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뇌경색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으며 생활하던 도중 의사 선생님의 이 병은 완치가 없고 현 상태만 유지해도 성공이란 말을 듣고 속상한 마음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3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온 저는 광폭하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웃으며 넘길 조그마한 일에도 성질부터 부리고 악을 쓰며 크게 소리를 지르고 하루 온종일 세상 원망만 하고 말입니다. 정말 내가 죄가 있다면 착하게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데 왜 내가 뇌경색에 하지절단까지 해야 하냐고 거의 매일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세상을 향하여 울분의 소리를 질러보고도 하였습니다. 소리 높여 펑펑 울기도 하였습니다. 애꿎은 가족들한테 속도 무지무지 썩히고 거의 매일 눈물을 흘리게 하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숨 쉰다고 다 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수백 번이나 죽으려 생각하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우측 편마비와 우측 하지절단의 저로서는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말로만 듣던 우울증에 걸려 숨이 막히고 대인기피증에 걸려 아무도 만나지 않은채 혼자 방에만 숨어 지내면서 병원 약으로 암울한 생활을 1년 이상 지내왔습니다. 따뜻하고 차디찬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힘들고 어렵게 살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온갖 짜증스러운 날들을 묵묵히 참고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으로 저를 돌봐주고 바로 서게 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죽음을 극복하고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몸 관리를 잘 못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모든 것이 내탓이라 생각하며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 백명이 넘던 휴대전화에 등록되어 있던 선후배 지인들은 제가 장애를 입고 말은 지금은 연락이 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병나고 후회하지말고 병나기 전에 몸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정말이지 후회막급입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다 내려놓고 내 탓이라고 되뇌이면서 위를 올려보지 말고 아래만 보고 살기로 마음먹고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마음 편하게 웃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몸 상태는 장애 2급이지만 마음의 상태는 행복 1급입니다. 모든 것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고 품어주었던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저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시켰습니다. 그동안 삶을 포기하고 못난 생각을 했던 저에게 삶의 의욕을 일깨워주고 묵묵히 사랑으로 돌봐주던 가족 친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병원 입원할 때부터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내아들은 병간호를 해주며 입원에 퇴원까지 숙식을 함께해주고 학교를 다니며 본인이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보호자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막내아들에게 무척이나 감사할 뿐입니다.
저에게 가족의 사랑과 믿음이란 새 생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원장애인복지신문’ 창사2주년 100만원 고료 장애인생활수기공모 ‘우수상’ 당선작] 황상정-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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