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지원해줄 학대 피해 지원 전달체계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학대 예방과 피해 장애인의 지원을 위한 실천 연구대회’를 열었다. 연구소는 올해 경기, 경북, 전남지역에 거주하는 재가 장애인 1천55명을 대상으로 학대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총 144명이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으며, 뒤이어 경제적 학대 58명, 신체적 학대 58명, 성적 학대 32명, 유기방임 2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대 유형별 장애유형을 살펴보면, 정서적 학대는 주로 지체·뇌병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85.3%)했고, 경제·방임·유기·신체·성적 학대는 주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서 많이 발생했다. 특히 성적 학대는 장애 유형 중에서 지적 장애인 66.6%로 지적장애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학대 지속 기간은 1년 미만이 37.7%, 1년 이상~3년 미만이 21.5%, 10년 이상이 18.5%였다. 아울러 학대 받을 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가 43.8%, ‘대응했다’가 55.4%다. 무대응이라고 답한 사람들에게 대응하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결과, 31%가 ‘과거에 신고를 했지만 도움 받지 못해서’, 18.4%가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연구소는 해당 물음에 대해 과거의 경험 혹은 현재의 인식이 신고를 하더라도 별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절반 가까운 응답자들의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조사 결과, 대응을 한 경우라도 대응방식이 공적기관이나 전문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 아닌, 당사자가 개별로 대응한 경우가 대다수다. 학대에 대응한 응답자의 대응 방식은 ‘행위를 한 사람에게 항의하거나 저항했다’가 33.9%, ‘가족 혹은 친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30.3%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찰서, 주민센터, 인권기관 등 공적 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25.7%에 그쳤다. 특히 ‘학대·장애·인권 관련 기관에 신고하거나 상담소 등에 상담을 요청했다’는 8.3%에 불과했다.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대를 경험한 당사자에 대한 공적기관·인권센터 등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학대 빈도가 높고, 지속 기간도 길지만, 정작 당사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학대 문제를 해결해 줄 지원 기관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2016년 상반기까지 전국 장애인인권상담전화를 통해 접수된 상담건수는 총 2만2천411건으로 그 중 장애인 학대 상담은 6천872건이다. 특히 학대 상담은 2014년 1천433건, 2015년 2천382건, 2016년도 상반기 2천109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피해장애인 쉼터는 시범사업형태로 6곳만 운영되고 있다.
연구소 이복실 정책위원은 “학대를 당한 많은 장애인은 회복지원과 자기옹호 방안 등이 수립되면 얼마든지 지역사회 자립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며 “따라서 학대피해장애인 쉼터는 피해자의 개별 상황에 맞는 회복지원과 이후의 통합된 삶을 살기 위한 공간으로서 자리매김 돼야 하며, 이를 위해 전문 운영과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위원은, 미국·독일·영국·호주 등의 국가는 모두 장애인 학대 피해자만을 위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모든 여성 피해자를 위한 시설이 있고, 미국의 뉴욕주는 모든 피해여성을 위한 시설에서 장애인 편의 시설과 지원서비스를 갖추고 장애인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는 학대피해 보다 범위가 넓은 집이 없는 상태, 즉 홈리스 정책에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외국의 경우 가족과 함께 거주가 가능하다. 한국은 학대 피해자만 분리해 거주공간을 제공해 원 가족과 이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네 국가의 경우 본인이 원하면 가족을 동반할 수 있다.
아울러 쉼터는 거주서비스와 더불어 각종 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단 학대를 당한 경우 현재 거주공간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거주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또한 폭력에 의한 심리 정서 문제, 사법 처리 문제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지원서비스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장애인의 접근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 전용시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설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물리 환경을 조성하거나 장애 유형에 맞는 방법으로 정보 제공 등이 이뤄진다.
특히 쉼터 이용기간도 최장 6개월~12개월로 최장 1년을 넘지 않는다.
이 위원은 이에 대해 한국의 쉼터 운영 방안도 ▲장애인만을 위한 쉼터보다는 학대 피해자를 위한 쉼터 마련 ▲장애인도 접근 가능한 편의시설 설치, 정보제공 방식 개발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정책 필요 ▲거주서비스와 지원서비스 분리 ▲단기 거주서비스 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아동, 노인, 장애인을 위함 쉼터가 각각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쉼터를 일시에 통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아동과 노인의 경우만이라도 학대피해에 따라 쉼터가 필요한 경우 장애인 쉼터보다는 아동쉼터나 노인쉼터를 이용하도록 하고 관련 제반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럼에도 향후에는 통합차원에서 쉼터를 통합·운영하는 방안에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학대를 당했다고 가족과 이별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은 피해자를 분리해 별도의 공간에 구금하는 지원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인과 가족이 원한다면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이 위원은 장애인복지법에서 명시하는 학대 피해장애인을 위한 쉼터와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이 서로 연계돼, 피해 장애인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쉼터의 역할은 피해장애인의 보호와 숙식제공, 일상생활 훈련·생활 지원 등을 통한 피해장애인의 자립지원, 정서 지원, 지역사회 내 다양한 자원의 연계, 의료비 지원, 자립정착지원금 지원 등이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학대 재발 방지와 원가족 회복 지원을 위해 가족과 학대 행위자 등에 대한 전문상담 서비스 제공, 수사기관의 조사와 법원의 증인신문에서의 동행, 법률구조기관등에 필요한 협조와 지원의 요청, 사례관리, 재학대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 교육 등의 종합 지원의 역할을 맡는다.
이 위원은 “쉼터의 궁극적인 역할은 자립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이라며 “쉼터가 긴급한 상황에서의 보호, 보호 안에서 이뤄지는 서비스 제공이 자립 지원 측면을 강화한다면, 권익옹호기관은 장기적으로 자립 지양하는 사례관리 재학대 예방 위한 통합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