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지체장애가 있는 중학교 1학년 자녀를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 보내는 학부모 김모씨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혼자서 밥을 먹기 어려운 아이들은 부모가 직접 밥을 먹이러 오거나 활동보조인을 보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 직접 갈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모가 모두 직장에 다니고, 활동보조인을 보낼 수도 없는 경우 속만 태워야 한다. 학교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며 이런 경우에도 활동보조인을 구해 보내달라고 권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을 아예 학칙에까지 명시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소재 모 특수학교의 경우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하기까지 학칙에 ‘보호자의 지원이 필요한 교육활동(현장학습, 식사 등)에 학기당 2회 이상 지원하지 않을 경우 퇴학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하자 학교는 학칙을 바꾸었지만 식사 시간마다 부모나 활동보조인이 오도록 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특수학교에서 적절한 편의가 제공되지 않아 장애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는 상황이 계속되자 학부모들이 또다시 인권위에 집단으로 진정을 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는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에게도 교육의 기회와 양질의 교육환경을 제공하도록 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전면 개정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장애학생과 학부모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당당하게 누리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부모연대 등은 기자회견 직후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부모연대 등은 지난해 7월에도 집단 진정을 냈었다. 인권위는 이 사건 중 일부를 장애 차별로 판단하고 교육부와 일부 특수학교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지만 학부모들은 인권위가 시정권고를 내놓은 사항에 대해서조차 교육현장에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같은 내용을 다시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권위는 지난 7월31일 장애 정도가 심각하고 여러 장애가 중복된 학생에게는 학교가 가래흡인 등 의료조치를 위한 편의를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모연대 등은 “인권위 시정 권고는 법에 따라 권고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시정 계획을 수립해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현재까지 교육부와 각 특수학교가 어떤 조치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 사례 또한 다시 집단 진정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이정욱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해 “중증장애학생들은 의료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전적으로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2차 진정을 통해 특수학교의 불법적인 행태들이 반드시 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모연대 등은 이번에 여러 특수학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교육권 침해 사례를 모아 유형별로 묶어 진정을 냈다. 사례를 살펴보면 특수학교 전공과에 중증중복장애학생은 입학하기 어렵도록 차별적 입학전형을 만든 경우, 특수학교 보조인력이 있는데도 식사보조를 학부모에게 직접 하도록 한 경우, 교외체험학습 참가 횟수를 학기별 2회로 제한하고 차량 지원도 하지 않은 경우, 통학버스 부족으로 학생 하루 평균 통학 시간이 3시간 이상 소요되게 하면서도 학부모 개인 차량은 학교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한 경우 등이다.
함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