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곳곳에서도 또 다른 세습이 공정한 사회를 좀 먹고 있다. 지역의 관공서뿐만 아니라 주요 사회 시민 단체들을 접수하여 리더로 활동한다. 바로 이런 것이 지방 호족으로, 토속 권력으로 자리 잡힌 듯하다.
그들은 내일을 보장받기 위해 가능하면 내 것을 많이 확보해 놓아야 안심이 되는 듯 나 하나, 내 가족만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를 더욱 강고히 할 뿐 만아니라 집단을 이용한 개인의 지역적 이기주의까지 발전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확보함으로써 사회 구성원간의 화합을 깨뜨리고 나아가서는 계층 간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자칫 자치 단체에게까지 갑론을박 하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사사건건 간섭을 하여 기틀을 흔들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오늘날 가칭 지역의 토호 세력 집단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 재계, 공무원 세계 등 자기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사회적·시민적 전체의 이익과 배치되는 것이라도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기주의가 생활화되면서 자신에게 특별히 이익이 돌아오도록 막무가내로 우기며 악을 쓴다.
필자는 지역마다 존재하는 유지라는 이유로 권력 같은 권력을 누리고 행세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동일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역의 토호 세력은 마이클 더글러스 교수의 ‘진보 도시 만들기’에 적극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 도시를 구성하는 4대 요소의 첫째는 지역의 ‘포용성’으로서 시정에 대한 주민 참여, 거버넌스, 시민 주도성과 관련된다. 둘째는 ‘분배 정의’로서 약자를 위한 자원의 배분과 대안 경제로서 사회 경제 혹은 공동체 구축과 관련된다. 셋째는 ‘도시의 상열’(conviviality, 유쾌함)로서 행복, 자아실현, 정체성의 구현과 같은 요소를 도시 발전의 궁극 목표로 추구한다. 넷째는 ‘생태적 번영’으로서 지구 온난화 시대 인간 생존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도시 차원의 인간- 자연 공생 체제 구축과 관련된다. 이러한 도시가 형성되면 지방 토속 세력의 권력 유지에 큰 저해가 될 것이다.
현대 지역사회의 토호 세력이란 그 지역 문화나 관습 등에는 상관없이 재화를 어느 정도 지닌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문화의 관습, 직업 따위를 그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받는다. 부모의 훌륭한 가업이나 기술을 세습해 가문을 빛내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돈으로 통화되는 기득권을 이용해 능력이 되지도 않은 자신이나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 줄 때 오는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폐단은 기회주의가 곧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특히 우리사회는 토호 세력에 의해 정치적 거지와 노예에 휘둘리는 위정자들이 다소 있는 것 같다. 속된 말로 거지와 노예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설사 토호 세력들의 지원 속에 기득권을 쟁취했다 해도 자신에 대한 희망과 미래가 없다. 끼니를 해결하고 희망과 미래를 약속받는 길은 주인에게 잘 보이고 환심을 사야한다. 그러려면 주인의 눈치를 잘 살펴 두었다가 주인의 맘에 들게 처신을 해야 한다. 이게 기회주의고 노예와 거지의 운명이다.
북한의 김정은 세습을 비난하는 것도 부적절한 세습을 통해 자신들은 호의호식할지 모르나 같은 동족을 저해하고 모든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토호와 기득권 세력의 권력과 부를 상호 보호해 주는 강력한 ’지배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와 한탄과 원망의 표현이다. 그들의 지배 체제를 보호하고 방치할 경우 장차 지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사회 분열이 초래될 것이다.
토호 세력이 정당한 방법에 의해 작용한다면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대부분 관계성의 유착으로 이뤄지면서 소외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토호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상호 보호하는 과정에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간다고는 하지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상호 작용도 많다. 문제는 이러한 작용이 만연함으로써 사회 불균형이 구조적으로 고착화, 고정화 되는 일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신분 양극화가 상호 작용에서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권력과 기득권끼리의 감싸주기를 통한 지역 사회 구성원의 양극화는 시민 화합을 깨뜨리고 자치 단체의 발전을 쇠약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에서 제대로 구성된 시민 단체가 나서 시민과 더불어 부당한 상호 작용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약의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동물의 세계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만 평화롭고 건전한 사회가 된다. 부당한 권력을 능력이라고 치부한다면 우리 사회는 늘 갈등과 분노 그리고 절망으로 붕괴될 것이다.
[시론] – 의관구체(依冠拘彘)
의관구체(依冠拘彘)
*의관구체(依冠拘彘)- 선비의 염치를 알지 못하면 옷 입고 갓 쓴 개나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명나라 말기의 문인 진계유(陳繼儒)의 《소창유기(小窓幽記)》에 나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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