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잊는 것과 잊지 말아야 하는 것 – 박혁종

박혁종 - 본지 논설위원
박혁종 – 본지 논설위원

인간에게 잊음의 기능이 없다면 평생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과 괴로움, 번민과 수치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잊지 못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잊음은 축복이다. 하지만 잊어버림을 마냥 축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다.
인간을 잊음의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은 나머지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잊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릇에 용량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용량이 있다. 그릇으로 헤아릴 수 있는 양이 무한하듯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양도 무한하다. 멈추지 않고 쓰기만 하면 열 되 들이 그릇으로도 한없이 쌓인 곡식의 양을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곡식이 눈곱 만큼씩이라도 그릇에 남다 보면 오래지 않아 꽉 차서 담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마음은 더욱 심하다. 사람에게는 기호가 없을 수 없어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하면 남고, 남으면 쌓이고, 쌓이면 가득차고, 가득 차면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방 한 치 크기의 작은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므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짐작하지 말고, 지금 당면하고 있는 현재는 빠짐없이 살피며, 이미 지나간 과거는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고요할 때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 같지만, 사물을 접하면 모두 대응할 수 있다. 마치 부자가 허다한 보배와 비단을 자루에 담아두고 부족함 없이 쓰면서 얽매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집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재물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삿된 것에 붙잡히지 않는다. 성품이 안정되고 성실을 보존하면 잊어도 해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익은 망각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그릇에 일정한 용량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일정한 용량이 있다. 열 되 용량의 그릇으로 한없이 쌓인 곡식의 양을 헤아릴 수 있는 이유는 그릇을 가득 채웠다가 깨끗이 비우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때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비우는 것이다.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 그릇은 곧 가득 차서 헤아리는 기능을 상실한다.
사람이 사방 한 치 크기의 작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기억과 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마음을 차지하고 있으면 마음의 용량은 금세 한계에 도달한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는 잊고 오로지 현재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이익의 논리다. 다만 조건이 있다. 성품의 안정과 성실의 보존이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사건을 기억하는 대신 감정을 잊는다.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도, 치가 떨리는 분노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감정의 편린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남아 때때로 가슴을 찌르기는 하지만 처음처럼 괴롭지는 않다. 남는 것은 감정의 흥분이 소거된 사건 그 자체에 대한 기억뿐이다.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감정을 망각하고 사건을 기억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하지 않는 파일이 쌓여 컴퓨터를 느리게 만드는 것처럼, 불필요한 감정의 기억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예민하게 곤두선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한다. 감정의 망각은 인간을 너그럽고 편안하며 지혜롭게 만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충실해야 할 것은 현재의 감정이지 과거의 감정이 아니다. 지난 감정은 불필요한 기억이다. 그것은 잊어도 좋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사건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기억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가능케 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 저작권자 © 강원장애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