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露)는 처서(處暑)와 추분(秋分)사이에 있는 절기로 양력으로는 9월 7일이나 9월 8일에 백로일이 들어서게 됩니다. 보통 입추를 가을의 초입이라고 한다면 보다 본격적으로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가 바로 백로입니다. 이때부터는 이제 반팔로 된 옷을 입을 수가 없을 정도로 서늘함을 느끼게 되지요.
백로는 흰 백(白)자에 이슬 로(露)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흰 이슬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이슬을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니 들녘의 농작물들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날이 차가와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백로가 되면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낮 동안에는 아직 여름의 기색이 남아 있지만 말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낮 동안에는 햇빛이 그 남은 힘을 뿜어내야 오곡이 잘 여물고 여러 과일에는 단물이 들어차게 되지요. 그래서 백로를 전후한 시기에는 맑은 날이 이어지면서 기온도 적당해야 좋습니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이 시기에 너무 이른 추위가 찾아오는 것은 조냉(早冷) 현상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조냉 현상이 나타나면 농작물의 생장이나 결실을 방해하게 되어, 수확의 감소로 이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백로일에는 벌초를 하거나 백로보기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백로보기는 백로일에 부는 바람을 통하여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습을 의미하는데, 바람이 부는 경우에는 벼농사가 잘 안 되는 것으로 보았지요. 하지만 백로일에 비가 오게 되면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인다‘고 하여 대풍이 들 것으로 보았고요. 이와 함께 음력 7월에 백로일이 들어가 있는 경우에는 참외나 오이 농사가 잘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백로가 되면 이제 여름은 그야말로 꼬리를 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의 더위를 생각하면 지긋지긋 하지만 농사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여름이 마지막 힘을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자식과도 같은 곡식에 가득 힘을 실어줄 한낮의 땡볕을 기대하는 농군들의 마음에 허탈감 생기지 않도록 더 이상의 태풍 소식이 없기를 바라는 이 도시인의 마음을 하늘이 알아주면 좋기도 하겠고요.
<자료: 산수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