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리 더운데 무슨 가을의 초입이냐, 하며 투덜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과 달라서 상대방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덥다고 투덜댔지만 처서를 앞두게 되면 밤과 새벽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이러한 처서(處暑)는 보통 양력으로는 8월 23일이나 8월 24일에 들어서게 됩니다.
처서는 입추 다음에 오는 절기로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에 해당합니다. 입추가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살짝 귀뜸해 주는 절기라면 처서는 그 가을의 기운을 우리 몸에게 알려주는 절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아침저녁으로 팔뚝으로 소름이 돋는다는 것만큼 가을이 다가왔음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러니 이제 지긋지긋하던 여름도 막바지구나 여기시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절기인 처서를 빗댄 재미있는 말들은 많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라는 말도 그 중 하나지요. 여름하면 모기인데, 그 모기가 이제 입이 비뚤어지면서 그 기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니, 곧 여름의 하직을 의미하지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을의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귀뚜라미 소리가 시작되고, 하늘의 구름 또한 풍성하게 깊어서 가을을 펼쳐 보여준다는 의미이겠지요.
처서에는 보통 풀을 베는 일을 합니다. 처서를 기준으로 햇살이 한풀 꺾이게 되니, 이제 그만큼 풀이 웃자라는 일도 없게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날 풀을 벨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처서에는 논두렁이나 묘소의 풀을 베어주는 일을 하고는 합니다. 또한 바쁜 농사일은 어느 정도 해낸 후이고, 본격적인 추수가 시작되기는 전이므로 이 바쁘지 않은 시기를 택해 풀을 베어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또한 예전에는 처서의 날씨가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고 하여, 이때 비가 오면 수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였지요. 보통 처서의 시기에는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온을 보이지만 그래도 낮 동안에는 왕성하게 햇살이 비치면서 가을걷이를 하는 농산물들의 마지막 성장을 거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때로는 이때 날이 안 좋아 농민들을 걱정시키는 경우도 있지만요.
만약 처서를 즈음해서 비가 잦으면 농수산물의 값이 올라가는 등 일반 국민들까지도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그 자연을 극복해 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을 버티고 이겨냈듯, 뒤늦은 가을 장마비 또한 어떻게든 이겨나갈 수는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여름과 가을 사이에 위치한 처서, 그 시기에 ‘나의 노력이 2% 부족했어’ 라며 후회하지 않도록 각자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곧 도래할 본격적인 가을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니 우리 모두 힘을 내야 하겠지요.
<자료 : 산수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