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大暑)가 지나가고 나면 설 입(立)자에 가을 추(秋)로 이루어진 절기 입추(立秋)가 위치하게 됩니다.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에 해당하고요. 한자어에서도 볼 수 있듯 입추는 드디어 가을이 출현하게 된다는 의미 또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는 보통 7월에 해당하며 양력으로는 8월 7일이나 8월 8일에 입추일이 위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서울 정도로 이때까지는 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2년의 경우 입추일을 전후하여 서울의 최고 기온이 36.8도를 기록하며 1994년 이후 가장 더운 날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열대야 또한 10여일이 넘게 지속되면서 입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연일 폭염이 계속되기도 하였고요. 이러니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라는 절기가 어울리지 않는 날씨와 종종 마주치게 되지요.
물론 이렇게 무더운 날씨가 자연에는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입추는 한창 벼가 익어가는 때이므로 맑은 날씨가 계속되면 벼의 생장에는 도움이 되겠지요. 보통 입추에서 처서 사이는 되도록 비가 적게 내려야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입추가 지난 다음 비가 닷새 이상 계속 내리게 되면 기청제(祈晴祭)라는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기청제는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기우제의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얼른 그치고 쾌청한 날씨가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바로 기청제(祈晴祭)인 것이지요.
입추가 지난 시기에는 김장용의 무와 배추를 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김매기도 끝이 나 어느 정도 벼농사와 관련해서는 농촌이 한가해지는 때이므로 이때 이러한 작업들을 하면 좋지요. 이와 관련하여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주 바쁜 시기는 지난 여름철의 한가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과 같은 더위라면 일을 많이 하고 싶어도 함부로 논이나 밭에 나가기가 힘들겠지요. 특히 비닐하우스처럼 밀폐된 곳에 들어가서 장시간 일을 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보도가 뉴스에 나오기도 합니다.
더운 날씨로 모두들 고생을 하고 있지만 입추의 날씨와 관련해서 점을 치던 풍속에서는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이 풍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맑기만 한 날씨가 곡식에게는 꿀맛 같은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 더위도 조금 견디기가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이때에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줄 것이라고 하였으며, 지진이 있으면 다음 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는 속설도 있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하지만 입추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더위라니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입추가 지나게 되면 밤이나 새벽으로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고 하였으니 그나마 조금 기대를 해보고 있기는 하지만 입추는 또한 말복과 비슷한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날은 덥고 기력은 쇠하니 뭔가 원기를 보충할만한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팍 드는 때이지요. 비가 적고 햇빛이 많았다면 각종 과일의 맛이 아주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고기를 먹는 것도 좋겠지만, 그만큼 제철 과일을 충분히 먹는 것 또한 기운을 좋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자료제공 : 산수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