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은 설날,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이 즐겨온 큰 명절의 하나이다.
한자로는 상원(上元), 상원절(上元節), 원소(元宵), 원소절(元宵節)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대보름 혹은 대보름날이라고 한다. 보름 또는 보름날이란 음력 초하룻날부터 열다섯 째 날을 가리키는데, 대보름의 ‘대’는 그 해에 맨 처음으로 제일 큰 달이 뜨기에 붙인 말이다.
이날은 1년의 첫 보름이라 특히 중요시하고, 그 해의 풍흉과 신수의 길흉화복을 점쳤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 농사의 시발점이라 생각하여 주로 농사일과 관계있는 의례가 많다. 달점, 노간주나무 태우기, 나무그림자점 등 풍흉을 점쳐보는 속신에서부터 ‘모심기놀이, 볏가릿대세우기, 보리타작’ 등의 놀이까지 농사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이다.
삼척정월대보름제는 구한말까지 그 맥을 잘 이어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전통문화가 단절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당시 면(面) 서기(書記)로 재직했던 김진원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1934년 일제는 소비절약의 명목으로 경찰을 앞세워 정해준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조건부로 정월대보름행사(기줄다리기)를 허가했다가 이듬해에는 아예 행사를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명목은 소비절약이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민중들의 반일시위를 두려워해서였다. 그것은 삼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대규모 민중이 참여하는 행사를 일제히 금지했던 조치에서 알 수 있다. 그때부터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는 특히 지역축제나 줄다리기와 같은 대동성을 갖는 전통문화는 깊고 깊은 수면기(睡眠期)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삼척정월대보름제가 다시 부활된 것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가 차원의 민족문화창달정책이 펼쳐지고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잠자고 있던 전통문화가 깨어나기 시작할 때였다.
삼척 지역에서도 선대가 물려준 전통문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지역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 이 분야에 남다른 애정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했던 변영진(邊永振), 김정경(金鼎卿), 정덕교(鄭悳敎) 등 지역 원로들의 고증에 의존하여 기줄다리기, 원님놀이, 천신제, 농신제, 해신제, 농악, 길쌈내기, 널뛰기, 그네뛰기, 씨름, 궁도, 굿 등 다양한 민속 문화가 발굴되었다.
이상과 같이 어렵게 발굴한 민속 문화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정월대보름민속축제로 그 방향을 잡았다. 주최는 삼척시번영회였다. 그리하여 1973년 정월대보름날(양력 3월 5일) 사대광장의 옛 터전인 삼척읍사무소 앞 대로에서 제1회 ‘삼척 고유민속 기줄대회’라는 이름으로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그 이후 삼척정월대보름제는 45년이라는 오랜 연륜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행사명, 시기, 장소, 운영주체 등 모든 면에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왔다. 행사 명칭의 경우 정월대보름제 → 죽서문화제 → 정월대보름제로, 행사시기는 정월대보름, 삼월 삼진, 6월 시민의 날, 10월 문화의 달 등 잦은 변화가 있었고, 행사장소 또한 사대광장, 읍사무소 앞, 농민회관 앞, 공설운동장, 성남오십천둔치, 봉황오십천둔치, 엑스포광장 등 여러 번 변화했다.
행사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삼척번영회, 삼척상공회의소, 삼척문화원 등에서 맡아왔다. 2006년부터 삼척문화원이 주관하여 축제명칭을 ‘삼척정월대보름제’라 하고, 행사장을 엑스포광장으로 고정시켰으며, 전통문화의 계승과 주민화합축제라는 성격에 맞게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호응도를 높여가고 있다.
▣ 기줄 다리기
줄다리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까지 분포하는 보편적인 민속이지만 풍흉을 점치고 재액초복의 기원과 암수의 결합과 같은 성격의 의미를 담는 것은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줄다리기는 벼농사 문화권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연행되던 대표적인 전통문화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받아 2015년 12월 제10차 무형유산보호협약의 정부간위원회에서 줄다리기를 한국의 18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 줄다리기에는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아시아 4개국이 최초로 공동 등재 신청한 것이다. 등재된 한국의 줄다리기에는 삼척기줄다리기(강원도지정 제2호), 영산줄다리기(국가지정 제26호), 기지시줄다리기(국가지정 제75호), 감내게줄당기기(경남지정 제7호), 의령큰줄기기(경남지정 제20호), 남해선구줄끗기(경남지정 제26호) 등 모두 6개의 무형문화재가 포함됐다.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으로 정착한 삼척기줄다리기는 예방주술(또는 재액초복)과 풍년(풍어) 기원의 의미를 갖는다. 먼저 액을 막고자 하는 예방주술은 줄의 모양을 ‘게’로 한 것에서 찾아진다.
게의 삼척 말(言)은 ‘기’다. 그래서 ‘게줄’은 ‘기줄’로 불리고 강원도무형문화재로서의 공식 명칭도 ‘삼척기줄다리기’(강원도무형문화재 제2호)이다. 그렇다면 ‘기(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기(게)’는 색이 붉다.
부적(符籍)에서 보듯 우리 민족의 전통에서 붉은색은 액을 쫓는 색이다. 동지섣달 팥죽을 쑤어 집 곳곳에 뿌리는 것이나 황토를 서낭당 입구에 뿌리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70년 전까지만 해도 후진, 정라진 등 삼척의 해안지역에서 정초에 기(게) 껍질을 문에 걸어두는 민속이 성행 했는데 그것도 바로 액을 쫓는 민속행위였다. 줄의 모양을 기(게)의 다리처럼 만들었다는 것에서 <암줄이든 수줄이든 그 줄의 머리인 마두에서 꼬리까지 이어진 줄이 몸줄이고 이 줄에서 촘촘히 벌림 줄이 만들어지는데 이 벌림 줄이 몸줄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만들어진 형상이 마치 바다의 게 모양 같다> 기줄다리기도 바로 그런 예방주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하나의 의미는 풍년(풍어) 기원인데 그것은 놀이방법에서 찾아진다.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을 기준으로 해안 쪽과 내륙 쪽으로 두 편을 가르고 해안은 암줄 내륙은 숫줄로 정하여 승부를 겨루는데 내륙 쪽이 이기면 풍년, 해안 쪽이 이기면 풍어라는 공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암줄과 숫줄을 결합시켜 줄을 당기는 줄다리기를 성행위로 보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성행위를 통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처럼 농사와 해사(海事)도 그렇게 풍성한 수확 을 거둘 수 있게 해 달라는 풍년기원놀이가 기줄다리기인 것이다. 삼척기줄다리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어린이들의 속닥기줄에서 청소년들의 중기줄 그리고 어른들의 대기줄로 이어지는 확대지향적인 줄다리기라는 특징을 갖는다. 입춘일 선농제가 지나고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 우선 어린이들이 양편으로 갈라 기줄다리기를 시작하는데 이를 일컬어 <속닥기줄> 또는 <속달기줄>이라 한다.
이때 사용되는 기줄은 그리 크지 않고 새끼를 모아 기줄을 만들어 경쟁을 하는데 북과 꽹과리를 치며 제법 기세를 올린다는 것이다. 이때 <솔닥기줄>이란 공적(公的)이 아닌 저희들 곧 아이들끼리만 하는 기줄쌈이란 뜻이라고 하며, ‘쏙닥질한다’ ‘쏙닥공론한다’에서 그 어원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솔다’즉 ‘넓이가 좁다’는 사전적 해석에 넣어 풀어보면 중줄이나 큰줄에 비해 너르지 않은 줄 곧 ‘속닥기줄’이 되기도 한다.
이 <솔닥기줄>이 지나면 정월 7, 8일 경에는 제법 규모가 커져서 청소년들이 주동이 되는 기줄다리기가 시작되는데 이를 <중기줄>이라 한다. 이 <중기줄>이 끝나면 그 규모가 더욱 커져서 어른들이 중심이 되는 본격적인 큰기줄다리기가 정월 15일에 거행되었으니 이를 <삼척정월대보름기줄다리기>라고 한다.
자료 : 김태수 박사 / 삼척문화예술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