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딛고 대기업 연구원 된 오영준 박사

“장애는 열등이 아닌 다양성일 뿐…기술 통해 장애라는 편견 넘어서라”

말도 배우기 이전 청력을 잃었다. 평생 소리를 듣지도 내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청각 장애를 딛고, 국내 최고의 대기업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폴리텍대학 졸업생 오영준(43) 씨. 말 대신 글로써 전하는 그의 메시지는 ‘희망’이다.
지난 2012년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 박사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오 씨. 이후 국내 최고의 대기업 S사 연구소에 당당히 입사한 그는, 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비롯한 가전제품을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기술인을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두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열병과 넘어지는 사고로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오 씨는 서울농아학교를 다녔다. 그곳에서 수화를 배웠지만, 글을 잘 몰랐던 그는 도무지 수업내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형과 누나가 사용하던 학습서를 몰래 꺼내 보면서 글을 익혔다. 침묵의 세상 속에 살던 아이에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씨가 열 살이 되던 해, 아들의 남다른 학구열을 아셨던 아버지는 ‘앞으로는 정보통신 기술자가 주목받게 될 것’이라며,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컴퓨터를 사주셨다. 아버지의 관심 아래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IT분야 전문기술인을 꿈꾸게 된 그는 1997년 서울기능대학 정보기술학과(현 한국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 정보통신시스템과)에 입학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전환점이자, 기술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큰 포부를 안고 대학에 발을 들였지만, 대학 강의를 독순술*만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강의에 쓰이는 전문용어들을 전혀 엉뚱한 의미로 오해해 혼란에 빠지는 일도 부지기수. 교재와 칠판의 필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뇌고 나서야 겨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곱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포기는 없었다.
자신감을 얻은 오 씨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2003년 석사, 2012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카이스트 인간친화 복지로봇 시스템 연구센터에서 전임연구원으로 활약했다. 석사 학위를 시작으로 현재의 연구원 생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한결같이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에 향해있다. 그동안 받은 수많은 도움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고, 장애인의 삶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들의 삶의 질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오 씨는 “장애는 열등이 아닌 다양성이다. 미국에는 나와 같은 청각장애박사가 500명이 넘는다. 당당한 자세로 큰 꿈을 꾸어야 한다. 기술의 힘으로 장애라는 편견을 넘어, 미래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길 응원한다”며 기술인을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한국폴리텍대학에는 지난 3년간 160여 명의 장애인 학생들이 입학해 기술인으로서의 희망찬 내일을 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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