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최저임금 보장, 장애인고용기금 활용하자”

국회 김병욱 의원,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 발의
고용부 “기금 활용은 더 고민해봐야”

○…6년 차 직장인인 김모씨. 매일 출근해 8시간 동안 하루 평균 150장의 쇼핑백을 만든다.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도 작성했고, 4대 보험과 퇴직연금에도 가입한 그가 받는 월급은 17만 원. 시급으로 따지면 1,000원이 겨우 넘는 수준이다. 현행법상 김씨가 받는 월급 17만 원은 합법이다. ‘최저임금의 적용 제외’ 규정이 있어서 신체·정신장애로 근로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최저임금을 지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증장애인 노동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노동자 평균 최저임금은 2천630원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정한 최저임금 6천3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마저도 못 받거나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매달 나가는 약값을 충당하기도 어렵다. 이에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장애인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액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현행법상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으로 선정된 장애인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하고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고용자의 부담으로 인한 장애인 고용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최저임금액 일부를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기금(이하 장애인고용기금)’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고 부작용 방지 위한 대책 마련해야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증 장애를 사유로 하는 최저임금 적용제외인가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중증장애인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최저임금 보장 방안은 근로능력별로 정부와 고용주가 책임을 차등화해 보조금의 비율을 정한 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에 대해 고용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고용보조금은 기업에서 장애인을 의무비율 이상 고용하지 않아서 납부하는 장애인고용기금에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직업재활시설·최저임금 적용제외인가 기업체들이 기존 장애인 근로자에게 생산성, 경제 부담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지급하기보다 퇴사 조치하거나 더 이상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장애인최저임금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한신대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는 “장애인 최저임금 문제가 생각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국과 다른 나라를 비교해보면 기본 전제부터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들이 주간보호센터나 보호작업장에서 낮시간 일자리 프로그램에 고용돼 저임금으로 근무하지만, 보호고용으로 일하는 장애인들은 사회보장 혜택으로 인해 기본 생활권은 확실하게 보장받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 때문에 발달·정신장애인이 성인이 된 뒤로 국가로부터 사회보장 연금을 받으면서 생산성 있는 근로환경에 투입되기가 쉽지 않다. 또 우리나라 직업재활시설은 매출에 대한 부담이 크고,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도 직업재활시설끼리의 경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복지와 고용 사이에서 방향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최저임금을 도입하면 ▲장애인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 ▲장애인 근로자 임금 향상 ▲근로장애인들의 기본노동권 보장 ▲사업장의 위상 상승 ▲사업장의 경쟁력 강화 등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반대로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사업장 운영의 어려움 △경영 부담으로 인한 사업장 폐쇄 위험 △사업주들의 중증장애인 근로자 고용 기피 △무분별한 시간제 일자리 확산 △탈수급에 대한 우려로 인한 장애인고용 이탈 등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변 교수는 “장애인 근로자 최저임금 적용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직업재활사업 예산 확대를 통한 인력 보강 ▲최저임금적용제외시설 설치 ▲고용부 고용장려금을 임금·운영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 ▲임금보전 수단으로 장애연금 등 사회보장 급여 증액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직업재활시설에서의 임금보장을 현실화하기 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최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직업적응훈련시설’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부 산하시설이 아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별도의 시설이라 오히려 현재 보호작업장보다 낮은 수당을 받는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가 큰 실정이다. 이에 새로운 근로사업장·보호작업장 산하에서 운영하도록 해 임금지급을 위한 순환 체계를 국가가 책임지고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변 교수는 “보호작업에서 근무하는 모든 장애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하나 예산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면 근로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근로자부터 최저임금제도를 적용하자” 며 “보호작업장에서는 하루 8시간 근무가 어려울 것을 고려해 시간제 급여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있다. 시간외 근무를 하면서 이를 프로그램으로 대체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악용 사례도 있고 1~2시간 근무로 인해 장애인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재원 마련 위한 장애인고용기금 활용, 고용부 명확한 답변 안 해

또한, 변 교수는 ‘충분한 장애인연금으로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최저임금 재원 마련을 위해 장애인고용기금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변 교수는 “장애인고용기금이 애초에 중증장애인들의 고용 안정성을 위해 조성됐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임금 지원에 사용하는 데 있어 타당성은 충분하다” 며 “물론 직업재활시설에서 장애인고용기금 전부를 임금 보전으로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다. 추후 활발한 연구와 토론을 통해 일정 이상의 기금을 임금으로 사용한다는 조항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신직수 사무국장도 기업에서 납부하는 장애인고용기금은 중증장애인 고용과 임금 보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냈다.
신직수 사무국장은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의 비용추계서를 보면 최저임금과 지급되는 임금의 차액 중 60%는 국가에서 지원하고 나머지 40%는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기존 최저임금적용제외시설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은 분명하다” 며 “이들 시설에 대한 ▲생산품 개발 ▲기능 보강 ▲생산시설 인증 ▲판매 촉진 등 기본적인 소득 보전 방안을 마련해주는 한편 기업 의무고용률이 올해 2.9%에서 오는 2019년 3.1%로 오르면서 발생하는 여유 자금을 중증장애인 고용과 최저생계 보장에 우선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조호근 노동상담센터장 역시 “헌법 제32조에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는 뜻”이라며 “장애유형·상태에 관계없이 근로자라면 누구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근로는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한편,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장애인 최저임금 도입은 찬성했지만, 장애인고용기금을 임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장애인고용과 김환궁 과장은 “최저임금, 직업재활시설, 감액제도 등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고용부 내부에서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장애인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지자체, 사회단체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장애인고용기금을 최저임금 보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지도 법적으로 더 논의해봐야 한다. 현재 이 기금은 △장애인고용장려금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사업 등 수행 자금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운영비 등에 사용되고 있다. 내부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기금을 사용할지 여러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더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법안을 발의한 김병욱 의원은 “오늘 토론회를 통해 최저임금을 못 받는 장애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러한 불공정한 관행과 불평등한 현실이 바로 적폐” 라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법·제도를 바꿔 이른 시일 내에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가장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하도록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토론회 소감을 밝혔다.

함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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