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는 1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및 발전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장애계는 장애인복지법이 시대적 변화와 장애인의 욕구를 담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해당 법을 대체할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제정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정부는 실행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난 1988년 제정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복지법’이 시대적 변화와 욕구를 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따라 이를 대체할 법안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2015년 본격적인 법안 마련을 서둘렀고, 이후 올해 1월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이 총 7장과 171조항과 부칙 3조항의 방대한 내용으로 구성된 ‘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제정안의 핵심 내용은 요구 충족을 위해 장애의 특성과 욕구에 적합한 복지지원을 골자로 하는 ‘장애등급제 폐지’다. 장애등급으로 인한 활동지원제도, 장애인연금제도 등을 신청 자격조차 되지 못한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애’ 개념도 의료적인 접근이 아닌, 사회의 문화적·물리적·제도적 장벽 등 환경적 요인과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차이 등 개인적 요인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에 제약이 있는 상태로 정의했다. 또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따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보장하고 장애특성을 고려한 복지서비스를 제공, 종합정책 수립을 위한 대통령 소속 국가장애인위원회 설립, 기본 생계유지를 위해 표준소득보장금액을 책정해 18세 이상 장애인에게 매월 지급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거주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필요한 조치, 자립생활주택 설치, 건강증진 정책 강구, 문화향유 및 생활체육 지원, 장애여성의 산후조리 도우미 지원 사업, 노령장애인 지원 등도 포함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정훈 정책국장은 “법에 정의와 평등이 빠져 있으면 법 기능을 상실한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인 삶과 권리를 뒷받침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권리를 제한하고 있어 폐기해야 한다” 면서 “그러나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수요자 중심, 장애인의 욕구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요청과 함께 모든 서비스가 작동되도록 명시하고 있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는 “권리보장법 실현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 개인별지원체게 도입을 위해서는 예산 확대가 핵심이다. 예산이 없으면 법 또한 무용지물이다. 예산 지원과 함께 법 제정의 현실화를 위해 국회가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태현 실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에서 얘기하는 모든 것을 실행시키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실효성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목적세, 공익펀드 조성해서 우선적으로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성대 전문위원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은 민주당에서 지난 총선에 장애인 1호 공약으로 채택했다. 당 차원에서 전폭 지지하는 법이기 때문에 대통령 주요공약으로 채택돼 있다” 면서 “다만 국회에서 의원 중심으로 법을 논의하게 되면 방대하고 전문적인 부분이 있어서 더욱 지체될 우려가 있다. 장애계 연대체에서 실무팀을 꾸려 복지부 실무자들과 주기적으로 논의해서 주요쟁점을 정리해서 심의테이블에 올려준다면 효율적으로 심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임을기 과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실행 가능성을 검토해 봐야 한다” 면서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현재까지 법령 개정, 서비스 논의 등 4년 동안 매달렸다. 장애계에서는 시혜에서 권리라고 법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에서는 현재 정책을 시혜라고 하지 않는다. 당사자들도 서비스를 받는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애인분들이 복지 서비스를 체감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예산확보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 후속작업이 되지 못하니까 체감되지 않는 것이다. 권리보장법을 제정하려면 다른 법률 규정법까지 모두 건드려야 한다”고 복지부 입장을 말했다.
이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