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이 지난 12월 5일 힐링멘토 심화코스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우리의 텅 빈 본성 그 자체가 가만히 있을 때는 모양이 없는 것을 공이라고 한다. 가만히 있을 때는…. 하지만 이게 움직이면 모양을 나타나는데, 모양을 나타내면 이게 앎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혜민스님의 말을 필자 나름대로 풀어 보니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공의 상태인데 움직이면 앎으로 나타난다. 텅 빈 것과 아는 것은 분리된 게 아니라 텅 빈 것이 곧 앎이라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무엇인가를 나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이고, 둘로 나뉘면 분열되기 때문에 항상 갈등의 요소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SNS상에서 현재 정부나 문대통령의 어떤 일에 대하여 약간의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면 이런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팬이 아닌 사람들하고 대척이 되는 것이다. 소위 문팬이라고 하는 분들은 문대통령과 동일시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의 말에는 관심조차 없다. 즉 자신과 문팬이라는 동일시를 하는 순간 폭력이 그 안에 있다. 폭력의 씨앗이 항상 그 안에 있다. 그게 어떤 것이든 간에…. 동일시하는 순간 모든 갈등이 시작된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본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에 보기 좋은 예를 들어 볼까 한다. 최근에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적폐가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에게도 사이버 공간에서 적폐라는 경고와 욕설이 쏟아진다.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이었는데 왜 문재인 대통령 열혈 지지층(‘문빠’ 혹은 ‘문팬’)의 적폐가 되었을까. 안지사가 문팬들에게 적폐가 된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안 지사는 지난달 28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공무원들에게 강연을 한 뒤 질문에 답한 것이 문제였을까? 안 지사는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보면 다른 의견을 싫어하는데 그럼 안 된다. 처음부터 ‘닥치고 따라와’ 구조로 가면 잘못된 지지운동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 아닌가. 또 “민주주의의 공론의 장은 다양한 견해와 도전과 토론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또한 맞는 말 아닌가.
김 대법원장의 경우는 더 어이가 없다. 재판의 중립성을 지켜달라는 말이 적폐로 지목됐다. 그는 지난 1일 “요즈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에둘러 말했다. 그런데도 문팬은 차마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욕설을 퍼부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난 게 문팬을 자극했다. 무죄라고 결론 낸 것도 아니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정도다. 불구속 수사는 형사소송의 원칙이다. 유죄 추정, 징벌적 구속이야말로 오래된 사법 적폐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은 함께 사는 나라다. 안 지사의 말처럼 5000만의 정부다. ‘당신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바퀴벌레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박멸 대상이 아니다. 생각이 다르지만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민주주의다. 당신 눈에는 그들이 제거 대상이지만, 그들 눈에는 당신이 제거 대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또다시 적폐 리스트를 만들 건가. 그런 리스트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게 적폐 청산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옷을 지을 때는 작은 바늘이 필요하지 기다란 창이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으며, 비를 피할 때에는 우산 하나면 충분한 것이지 하늘이 드넓다 하여 따로 큰 것을 구할 수고가 필요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자신과의 생각, 행동, 관습, 등이 다르다 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의 삶은 그 타고난 바와 생김에 따라 모두가 다 값진 보배가 되는 것이다.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물고기의 삶은 아주 특이하다. 이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다 기르면 5~8㎝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까지 자란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까지 성장하게 되는데 같은 물고기지만 어항에서 기르면 피라미 만하게 자라고, 강물에 놓아두면 대어가 되는 신기한 물고기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코이의 법칙’이라고 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생각의 크기에 따라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코이의 법칙, 자신의 무대를 어항이라 생각하지 않고 강물이라 생각해서 꿈의 크기를 키운다면 우리는 인생도 우리의 사회도 우리의 민주주의도 달라질 것이다.
열혈지지층 ‘코이의 법칙’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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