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8주년을 보내며)
박혁종 / 본지 대표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덥석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 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우근 학도병의 최후의 편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던 낙동강에, 중학교 3학년 16세 소년이 있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어머니의 품을 애타게 그리던 안타까운 희생을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이다. 이 땅이 있어 우리가 서 있듯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당시 격전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이우근 학도병 편지비에는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로 기록된 포항여중전투에 참전해 17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전쟁이란 공포와 닥쳐올 죽음 앞에서 유일한 믿음인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지막 글이 담겨있다.
포항 전몰학도 충혼탑은 6·25전쟁 당시 10대의 학생들이 펜 대신 총을 쥐고 교복을 입은 채 자진 입대하여 산화한 1,394위의 영령들이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8월 11일 추념식이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생살이 뜯겨 고통에 몸부림치는 전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인민군과 마주쳐 생사의 기로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것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전장의 모습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 함께 전장에 투입됐던 학도병 군번도 없던 이들은 전장의 기록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60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러 6.25 참전 용사 생존자들도 당시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지만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월 속에 “아~그날….”로만 여전히 잊혀 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전쟁 이후 그들은 헌신짝처럼 내버려 졌지만 6.25라는 말조차 사회로부터 냉대 받는 지금의 세태가 두렵기까지 하다. 휴전상태인 남과 북이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비극의 역사는 우리가 잊지 않고 되찾아야 할 이유다.
한편 6.25 남침도발을 일으킨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첫 번째 면에 경제 개발을 호소하는 기사가 실리고, 2면에야 ‘1950년대의 그 정신 그 투지로’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고, “6·25 전쟁 시기, 수령 결사옹위 정신, 조국수호 정신, 창조와 혁신 정신이 발휘됐다”며 당시 시대정신을 다시 부각시켰다.
4면에서도 6·25 당시를 설명하는 기사가 실렸지만 미국을 직접 지칭하진 않고, 원수라든가 강대한 적이라고 표현했다. 해마다 6·25를 맞아 이어진 반미 선전선동 구호들이 사라진 것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6월 25일 “미제의 북침 핵전쟁 도발 책동을 단호히 짓부숴버리자”는 사설에서 “미제에 대한 치솟는 증오와 분노로 복수의 피가 끓는다”고 표현한 바 있고, 또 재작년 6·25 때는 “미제는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도 승냥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태도가 바뀐 배경에는 지난 북미정상회담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우린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덮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문건에 서명한다”라고 했다.
북한이 매년 6월 25일 미제 반대 군중집회를 열고, 7월 27일까지 ‘반미공동투쟁월간’을 진행했지만 올해는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전개가 자칫 평화니 한민족이라는 이념이나 정신의 발현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간파해야 한다.
결국 요청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시시비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분명한 가치 기준의 정립, 바로 참된 의미의 명분을 세우는 것과 그것을 지키는 절개이다. 여기서 절개라는 것은 국가안보와 대한민국의 헌법이 정한 명확한 이치이다.
인간의 도덕성과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풀기 어려운 인간의 실존적 현실이라고 하지만 이런 세상일수록 더욱 역사의 도덕성을 구현하는 정직한 판단, 역사의 실존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