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종 / 본지 대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장애인등급폐지에 따른 정부가 내 놓을(올 7월) 평가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의학적 기준에 따라 획일적으로 매겨져 있는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하고, 맞춤형 복지공약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급 지체장애인은 하루의 대부분을 활동보조인과 보낸다. 활동보조인은 장애인 당사자의 손발이라 할 수 있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활동보조 서비스는 현재 장애 1급에서 3급(중복장애)까지만 받을 수 있다. 활동에 어려움이 있어도 등급이 낮으면 지원이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등급에 따라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등급제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지 공약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 달 발표 예정인 새 평가표를 살펴보니,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 방식이 일단 지금 등급제와 유사하다. 또 평가 점수도 지체 장애인이 2층에 살면 4점, 지하에 살면 2점으로, 이동에 제한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매기는 점수는 차이가 난다.
돌봄 책임을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밝혔으면서도 평가표에는 정작 이런 취지가 담겨 있지 않다. 혼자 사는 장애인은 36점을 받지만 주위에 돌보는 사람이 1명만 있어도 점수는 12점으로 크게 떨어진다.
보건복지부는 신체 기능에 초점을 맞춰 평가표를 만들었다면서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새 평가표는 의견 반영을 거쳐 내년 7월부터 적용된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 등은 “이의 신청, 이런 추후의 과정이 아니라 뭔가 사정 단계부터 장애인 당사자 욕구가 직접 반영 될 수 있는 구조가 반드시 보장이 되지 않고 있다” 며 “영국이나 일본처럼 지원받을 서비스를 장애인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개정돼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10대 소년은 소변이라도 보려면 엄마가 매번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가야 한다.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이 당사자인 장애인을 좌변기에 앉혀줘야 대·소변을 가릴 수 있는 상태이다 보니 하루 5시간씩인 학교생활만으로도 시간은 바닥나고, 나머지 19시간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다.
10대 소년 장애인에게 정부가 붙여주는 활동보조인의 근무시간은 한 달 최대 82시간, 그나마 그런 활동보조인조차 100만 원도 안 되는 보수 탓에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부모로서는 맞벌이로 나가서 돈을 벌려고 해도 엄두가 안 난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은 날수 있을까? 씻기고 나와서 재우고 하다 보면 새벽에 잠자리 들기가 일쑤이다.
전체 6등급 중 3등급 미만은 활동보조인이 지원되지 않고, 2, 3등급은 보조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2년에 한 번 받는 등급평가도 장애인의 평소 생활은 전혀 관찰하지 않고 몇 가지 설문만으로 끝난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눠서 정책을 시행하는 것 자체가 인권을 무시한 행정편의적인 사고이다.
정부는 다음 달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지원기준을 시행한다고 했지만, 예산이 대폭 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서비스 향상은 요원해 보인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으로 등록되기 위한 조사가 아닌 장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불편함이 있느냐를 측정하는 기준”이라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의 경우 2층은 4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경우 2층과 지하 모두 2점을 부여하도록 논의 중” 이라고 밝히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평가표라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는 만큼 풍문에 의한 국민들 우려가 클 것으로 사료된다는 것이 정부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폐지민간협의체를 통해 장애등급을 폐지하고 기존 6등급체계를 장애정도로 단순화하는 등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좁혀가고 있는 과정 중” 이라며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확실하게 마련된 새 평가표를 공개하면서 국민들께 전해드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장애인의 오랜 염원이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 마련되고 있는 평가표의 기준이 애매해 논란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