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입동(立冬)에서의 ‘나’ 찾기

박혁종 본지 논설위원

절기상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인 지난 7일은 전국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비교적 포근했다.
다시 겨울의 시작 됨이다. 겨울은 앙상한 나뭇가지의 시간이고 마지막 잎 새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을 바람은 말없이 지나간다. 익어서 휑하니 떨어져 가는 것은 다시 비워가고 물러가는 것임을 아는 듯 말이다.
겨울은 세월의 흐름을 절절히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시간이야 말로 인생을 사는 시간이고 내가 존재하는 순간이다. 그래.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일상의 걸음을 잠시 멈추어 선다.
앎과 지식에는 3가지 영역이 있다. 사물에 관한 대물지식, 사람에 관한 대인 지식, 그리고 인생에 관한 대생 지식이 그것이다. 조작 가능한 생명, 기계인간의 출현 등 상상초월의 과학기술, 대물 지식 뉴스가 일상이다. 전통의 인문사회과학과 최근의 뇌 과학은 사람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이해 또한 높은 수준으로 축적해왔다.
하지만 대물지식과 대인지식은 ‘그 것’과 ‘그 사람’에 대한 것일 뿐이다. 나고 죽는 한정된 인생을 ‘나’ 자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지혜를 주는 대상지식은 때론 종교처럼 익숙한 것 같으나 여전히 신화처럼 낯설고 의문스럽다.
대생 지식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 세상의 모든 답은 질문에 비례하고, 질문은 관계에 비례한다. 인류의 놀라운 진화는 생존이건 호기심이건 그만큼의 수많은 질문을 통해서 가능했다.
허구적인 언어, ‘내일’과 ‘만약’의 탄생이 인류사의 분수령이었다는 평가처럼 말이다. 어쩌면 삶에 대하여 정답을 알고 있다는 누구보다 삶에 대하여 늘 생생한 질문이 있는 누구야말로 가장 살아있는 존재라 하겠다. 공자의 ‘지천명’ 조차 하나의 의문사이어야 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질문은 폭이 넓고 깊어 낯설수록 위대한 지혜를 찾을 수 있다하겠다.
우주 만물이 서로 당기는 중력 속에 존재하듯, 인간의 삶 또한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인생사가 쉽지 않은 것은 그 관계가 미로처럼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왕 인생관계의 미로를 헤매다 지치고 쓰러지며 살지 않나 싶다. 어떻게 관계를 다루어야 하는가? 소견에 관계는 맺고 끊는데 그 지혜가 있다고 본다. 두렵고 낯설으나 뜻있는 관계는 용기와 배짱으로 찾아 나서고, 낡고 익숙해진 관계는 새롭게 다듬는 것이다. 진실과 진정성이 사라진 관계는 끊는 것이 지혜다. 새 것은 오직 낡은 것의 끝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계가 움트는 순간이야말로 삶 의 꽃봉오리이다.
올 겨울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 등 삶의 시공이 적지 않게 어지럽고 어렵다. 인류 ‘내일의 역사서’까지 회자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입동(立冬)이 두러워 춥지 않는 겨울은 없다. 삶이 힘들수록 삶에 대한 질문과 관계는 더욱 넓고 새로워져야 한다. 욕심에 오늘날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을 주는 위대한 사상가를 대망해 본다.
하지만 위대한 사상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우리들 각자가 삶에 대한 질문을, 삶 속의 관계를 진실과 진정, 용기와 배짱으로 찾아 나가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잉태된다 하겠다.
입동이 시작된 우체국 옆길 가로수의 낙엽이 우수수 나부낀다. 우체국은 우리 사회 소통증진이 존재가치이다. 하여, 초겨울 우체국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싶다. 누군가의 삶이 반추되는 공간이 되고 싶다. 편지 한 통으로 삶에 대한 위대한 질문과 위대한 관계를 낳게 하는 징점다리가 되고 싶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라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노래 말이 문득 스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자연의 변화는 우리 인생살이의 굴곡과도 비슷하다. 매서운 겨울 마냥 어렵고 힘든 때가 있으면 따듯한 봄날처럼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있다. 겨울같은 춥고 매서운 힘든 고비만 잘 견디며 내면 분명 좋은 날은 오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생의 법칙을 잘 표현한 속담이 ‘겨울 끝에 봄이 있다’이다.
입동의 어느 쉼이 있는 날, 남은 인생조각을 하나 둘씩 맞추자. 오늘도 남은 인생 조각을 챙겨들고 감격에 눈물 흘리며 하루를 시작하자. 저무는 황혼의 저 노을이 아름답지 아니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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