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서민 곳간부터 살펴 주세요

박혁종 본지 대표

이번 주(9.18~9.20)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앞으로 남북 관계의 방향을 가를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청와대는 정치권의 동행을 거듭 요청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대표 들은 거부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11일 현재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대략의 계산서도 첨부했는데, 일단 내년에만 2천986억 원을 추가로 편성하면서 이미 잡혀있는 예산을 더하면 4천700억 원을 내년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 돈의 대부분은 철도, 도로, 산림 복구예산으로 잡혔는데 이른바 판문점선언 이행 예산은 당초 계획한 1천726억 원에 이번 추가 편성액을 더해 총 4천712억 원으로 늘어난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전체 예산의 87% 정도가 철도·도로·산림 복구 명목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비용추계에 내년도 투입 예산만 적시했다. 연도별 세부 재원소요는 추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비용추계서를 의결했지만, 상세 설명은 생략했다. 통일부는 비용추계서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고,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면서 비로소 공개됐다.
그러나 이 돈은 당장 내년에 쓰일 가장 기본적인 예산일 뿐, 경협이 본격화하면 그 금액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 기관에 따라 수십조 원에서 15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하지만 정부는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에 담긴 비용추계서에서 남북 철도·도로협력사업에 2천900억 원을 책정, 내년 한해에만 들어갈 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 방침에 씨티그룹(미국 4대 금융회사의 일원으로, 자산 기준으로 4번째의 은행)은 철도에 27조, 도로에 25조원 등 70조 8천억 원이 든다고 분석했고, 미래에셋대우는 철도에 57조, 도로에 35조원 등 112조 원으로 분석했으며, 금융위원회는 철도에 85조원, 도로에 41조원 등 153조 원까지 전망했다.
지난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했던 경협프로젝트를 실시하라는 이야기인데, 2천억 정도가 든다고 말하면 소가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이는 수십조로 불어날 경제 협력 예산을 감추려 1년 예산만 넣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이 민관에서는 수십조, 수백조 대북사업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북 사업에 대한 백지 보증 수표를 주는 셈이며,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은 국민 모두가 염려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5년 내지 10년 이상의 장기프로젝트의 예산을 1년치만 공개하는 것은 대단히 부정확하고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경제는 IMF 이후 청년고용 문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책 연구기관인 KDI, 한국 개발 연구원이 우리 경제가 다방면에 걸쳐 침체 국면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특히 최근의 고용부진이 경기와 인구구조의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 설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진단인 셈이다.
차량용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의 직원 수 50명이 안 되는 이 중소기업인데, 수익성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이는 자동차 내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다른 부품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지만, 설비도 고용도 더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한 간부는 “수익이 실질적으로 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상승, 단가에 대한 강제적 인하로 인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 업체가 우리 기업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투자 부진과 내수 악화로 고용이 위축되고 있다.
정부는 7월 고용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상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성장 등의 정책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중소기업들은 빚을 제때 못 갚을 수준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7월 말을 기준으로, 중소기업의 대출연체율은 0.58%로 6월보다 0.1%p 올랐으며, 특히 조선과 자동차 분야가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남북 화해와 협력 사업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내 곳간이 거덜 나는 지경인데 이웃사촌 집 곳간을 채워준다며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은 갓 쓰고 양복입고 자전거 타는 격이 아닌가 싶다. 꼴이 우습게 보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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