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건강보험에 허위 요양급여를 청구하는 행위는 청구서를 ‘위조’한 것이므로 관련 제재를 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행정처분을 할 때는 형사사건 등에서처럼 ‘권한 없는 자’가 한 행위로 위조나 변조를 좁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조한창 박해빈 신종오 부장판사)는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명단 공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요양기관을 운영하는 A씨는 비급여 대상인 해독주사 등의 비용을 환자에게 징수하고도 건강보험에 진찰료 등을 청구해 1억여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적발됐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이에 대해 211일간의 업무정지 처분을 하고 건강보험료 거짓청구 요양기관 명단에 포함해 공표하겠다고 통보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관련 서류를 위조·변조해 요양급여비용을 거짓 청구했다가 과징금이나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요양기관은 기관명과 대표자 이름 등을 공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A씨는 명단 공표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A씨가 부당하게 요양급여를 청구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명단 공표 대상의 조건인 ‘관련 서류의 위조·변조’가 있었는지를 두고 판단이 갈렸다.
1심은 “일반적으로 위조는 권한 없는 자가 사용할 목적으로 현존하지 않는 문서를 새로 작성하는 것이고 변조는 문서 등을 권한 없이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넓은 의미의 위조는 ‘문서 등의 허위 작성’이라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법률 해석을 할 때 명확한 근거 없이 넓은 의미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부당 청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A씨에게 청구서를 작성할 권한이 있는 만큼 ‘위조’는 아니므로 명단 공표는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한 위조·변조에는 좁은 의미의 ‘유형위조’만이 아니라 작성 권한이 있는 자가 허위의 서류를 작성하는 ‘무형위조’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을 뒤집었다. 1심 판결 이후 유사한 사건에 대해 나온 대법원 판례가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조항의 ‘위조·변조’를 형법상 가장 좁은 의미로 한정 해석할 근거가 없다” 며 “이 조항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거짓 청구를 억제해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인데, 이를 유형위조에만 적용하면 훨씬 많은 무형위조에 대해서는 공표를 할 수 없어 입법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 고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최호철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