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눈 내리는 날은 기차를 타자
타고, 무작정 어딘가를 달려 가 보는 거다
청량리에서 경춘가도 설경을 따라 얼음호수에 이르러
송알송알 얼음 빙판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에 귀 대보는 일,
싸-아한 냉기에 코끝 붉게 물들이며
한 순간 세상을 잊어도 좋으리라
눈 오는 날은 무작정 기차를 타자
중앙선 열차를 타고
칼날 같은 겨울 파도가 철썩거리는 정동진 바닷가에 이르러
모래시계의 주인공이 돼 보기도 하고
눈송이 삼키는 고래뱃속 같은 바다에 눈 맞추며
혼자 모래사장을 걷는 일,
눈물 나도록 쓸쓸한 사람은 더욱 투명하게
거울 속 내 얼굴 볼 수 있으리라
눈 내리는 날은 기차를 타자
한 번 가려면 울고 넘어갔다는 태백준령을 눈과 함께
흰 발자국 꾹꾹 찍으며 산 노루처럼 껑충껑충 뛰어
청량리역에서 하루 한 번 떠나는 열차를 타고
정선을 지나 태백에 이르러 단군신전에서 내 뿌리도 만져 보고
막장에서 마지막 숨 거두고 간 광부들의 슬픈 사연도 뼈에 새기면서
뼈 가루 같은 눈길을 밟아 보자
그들의 숨소리가 얼마나 쓰라렸던 것인가를,
송화 가루 같은 내 삶일지라도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들을 수 있으리라, 들려 오리라
내 괴로운 것, 내 못 가진 것, 내 남루한 것,
흰 눈 속에서 흰 태백의 저탄장에서 훌훌 다
떨쳐 낼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사는 것 별 것 아니라고 훠이훠이 손 흔들며
돌아올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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