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길
봄은 쪽파 밭에서 온다
밖이 생기가 돌수록 안은 슬프다
낮은 자세로 활짝 반기는 봄동잎이
어머니 텃밭에 한 산림을 차렸다
그 봄동잎처럼 달착지근했던 추억 한 갈피
봄동잎 한 장씩 전을 부쳐 봄을 씹으면
향그럽게 겹치는 엄마의 실루엣
이른 봄 별꽃 느타리 버섯무침과
토하 달래 간장에 배릿한 냄새 한 움큼
조각보 만들 듯 어울려 살라던 그 목소리
어머니 기억을 불러내려 해도
쪽파처럼 금이 간 창틀조차 내력을 입 다문다
그 창틀에 감춰둔 꽃골무 만한 비밀들
쌉소롬한 그 향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데
이제 집은 대를 잇는 곳이 아닌지…
빈 집 행간에서 바람이 휑하게 들락인다
겨우내 몸을 낮추고 냉기를 이겨낸
봄동잎을 만져본다
한평생 낮게만 살아오신 내 엄마의 지문 같은 생
그 생이 풀린 올처럼 눈에 밟힌다
정지된 주방에 뻘건 녹은 시간 그 너머를 셈 하는 듯
주인 없는 그릇들만 빛과 어둠에 살을 부빈다
밥숟가락들이 콕콕콕 쪼아대던 말들
나의 거칠었던 언어들이 목안에 가시로 걸려
목젖이 펄펄 끓어오른다
어머니 먼 길 떠나신 별꽃만 가득한 빈 집
* 별꽃 : (곰방부리)의 방언
* 현종길
* 「문장 21」 (시) 신인상 등단 (2013)
* 국제 PEN 한국본부 회원, 강원 PEN문학 운영위원
* 삼악시 동인회 회장역임, 사임당 문학회 詩文會 편집위원
* 춘천 문학상 수상 (2018년)
* 춘천문협 이사
* 한국문인협회 강원문학 회원
* 강원여성문학인회 이사
* 저서 「한 알의 포도가 풀무를 돌린다」
「카르페 디엠」
< 저작권자 © 강원장애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